투자를 사랑하는 법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음악을 기대한다.
그러나 처음 1년은 손가락이 아플 뿐이다.

스케일을 반복하고, 손목 각도를 교정하고,
메트로놈에 맞춰 같은 마디를 수십 번 친다.
아름다운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오는 것은 지루함과 의심뿐이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러다 어느 날,
손가락이 건반을 기억하는 순간이 온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연주한다.
그때 비로소 음악이 시작된다.

에리히 프롬은 1956년에 한 권의 책을 썼다.
《사랑의 기술》.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사랑이 기술이라니.


프롬은 나치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 학자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인간 소외를 연구하던 중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고, 그는 대서양을 건넜다.
그는 궁금했다. 모든 학자들이 그렇듯…
왜 수백만 명이 자발적으로 파시즘에 복종하는가.
왜 인간은 자유를 두려워하는가.

23년 뒤, 그 질문의 일부가 답이 되었다.

프롬의 진단은 단순했다.
사람들은 사랑받는 법에만 골몰한다.
매력적인 외모, 사회적 지위, 재산.
조건을 갖추면 사랑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그는 이것을 ‘시장 지향적 인격’이라 불렀다.
사랑조차 교환가치로 환원되는 시대.

그러나 사랑은 음악이나 의학과 같다.
이론을 배우고, 실천하고, 숙달해야 하는 기술.
프롬이 제시한 네 가지 요소는 이것이다.
보호, 책임, 지식, 존중.

상대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에 응답하겠다고 결단하고,
피상이 아닌 깊은 수준에서 이해하려 하고,
있는 그대로 보며 상대의 성장을 돕는 것.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도발적인 제목에 깜짝 놀랐다.
가장 아름다워야하는
가장 인간적이어야하는 사랑이 기술이라니…
하지만 사랑은 기술이 맞다.
배우고 익혀야하는…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도 기술이다.

투자자들은 수익을 기대한다.
좋은 종목을, 좋은 타이밍을, 좋은 정보를
얻으면 수익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프롬의 표현을 빌리면, “수익받는 법”에만 골몰한다.

그러나 투자도 사랑과 같다.

데이터를 읽는 법을 배우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훈련을 하고,
공포 속에서 판단을 유지하는 인내를 기르고,
시장을 있는 그대로 보는 존중을 익혀야 한다.
보호, 책임, 지식, 존중.
프롬의 네 요소는 투자의 요소이기도 하다.

자산을 보호하고. 손실에 책임지고.
시장을 알려 하고. 시장이 주는 신호를 존중하는 것.


나는 15년 동안 투자를 배웠다.
처음 몇 년은 수익을 기대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을 기대한 사람처럼.
하지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대신 스케일을 쳤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코드를 짰다.
하루하루 기록하고, 데이터를 수백 번 돌려봤다.
지루했고, 의심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러다 어느 순간,
숫자가 익숙해지고, 시장을 읽게 되고,
수익이 만들어졌다.

투자라는 것은 충만함에서 나온다.
텅 빈 사람은 시장에서도 움켜쥔다.
남의 의견에 매달리고, 뉴스에 흔들리고,
공포에 팔고, 탐욕에 산다.
“내면이 텅 빈 사람만이 끝없이 움켜쥔다”는 것.
그것은 사랑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원칙을 세운다.
자기 판단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실행과 결과를 감내할 수 있다.
잔이 채워져야 넘치듯,
자기 안에 충만함이 없는 투자자는
시장에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다.

프롬이 말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구조는 모든 기술에 적용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투자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참고: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1956)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 measure-dont-predict.com

Leave a Comment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