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역사 ②] 오락 한 판에 2,000원


어릴 적 오락실을 좋아했다.

어두컴컴한 오락실. 버블버블.
작은 공룡 두 마리가 거품을 쏘며
적을 가두는 게임이었다.

한 판에 50원. 동전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다.

몇 년 뒤 게임들은 100원이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500원.
지금은 한 판에 2,000원이라고 한다.

게임에 빠져 있는 동안
동전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것이 경제의, 돈의 원리라는 것을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이다.
숫자로 보기 전에, 몸으로 먼저 느끼는 것.

①편에서 네로의 은화를 다뤘다.
2,000년 전 로마 황제는 은화에 구리를 섞었고,
와인에 물을 타듯 화폐의 가치는 서서히 녹았다.

그로부터 1,900년 뒤.
미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만 이번에는 은화가 아니라 달러였고,
구리 대신 종이와 잉크만이 필요했다.


1958년, 영국의 경제학자 A.W. 필립스가
하나의 곡선을 그렸다.

가로축에 실업률. 세로축에 물가상승률.
데이터는 명확한 우하향을 보여주었다.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은 내려가고,
실업률이 오르면 물가는 내려간다.

둘은 동시에 오를 수 없다.

이것이 필립스 곡선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이 곡선을 핵심 도구로 채택했다.
정책 입안자들은 마치 온도 조절기를 다루듯
경제를 미세 조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업률이 높으면 돈을 풀어라.
일자리가 생기고, 물가가 약간 오르지만 괜찮다.
물가가 높으면 돈을 회수해라.
실업률이 약간 오르지만 감당할 수 있다.

해열제와 진통제를 번갈아 쓰는 것처럼.
열이 나면 해열제, 아프면 진통제.
단순하고 우아했다.


문제는 한 가지 약을 너무 오래 썼다는 것이다.

케인즈의 처방은 대공황이라는
특수한 위기에서 태어났다.
경기가 바닥에 빠졌을 때,
정부가 돈을 써서 수요를 만들면 된다.
루즈벨트의 뉴딜이 이 위에 서 있었다.

처방은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계속 썼다.

케네디가 썼다. 존슨이 썼다.
린든 존슨은 두 전선을 동시에 열었다.
‘위대한 사회’ — 대규모 복지 정책.
베트남전 — 끝이 보이지 않는 전비.
재원은 통화량 확대였다.
달러를 찍어서 복지를 하고,
달러를 찍어서 전쟁을 했다.

1964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 실업률 5%.
교과서적인 안정이었다.


닉슨은 더 대담했다.

1971년 8월 15일.
달러와 금의 태환을 중지한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사실상 종말.

금 1온스 = 35달러라는 약속이 사라지는 순간,
달러 발행의 마지막 브레이크가 해제되었다.

닉슨의 계산은 단순했다.
재선을 위해서는 경기가 좋아야 했다.
금태환이라는 족쇄를 풀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임금과 물가를 동결시켰다.
돈은 풀되, 물가는 못 오르게 막겠다는 것.
해열제를 먹이면서 체온계를 감추는 것과 같았다.

일시적으로는 먹혔다.
닉슨은 1972년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밀턴 프리드먼은 이미 경고하고 있었다.
“억압된 인플레이션은 통제가 풀리는 즉시 폭발한다.”


1973년 10월 6일, 방아쇠가 당겨졌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욤키프르 전쟁.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섰다.

보복은 즉각적이었다.
OPEC 아랍 국가들이 석유를 무기로 사용했다.
석유 금수조치. 가격 4배 인상.

석유 가격이 4배 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운송비가 오른다. 원자재가 오른다.
공장의 전기료가 오른다. 난방비가 오른다.
마트의 달걀 가격이 오른다.

이미 통화량 팽창으로 부풀어 오른 경제에
석유라는 불씨가 떨어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교과서가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용이 오르니 기업은 가격을 올린다.
가격이 오르니 소비자의 주머니가 얇아진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자른다.
사람이 잘리니 소득이 줄고,
소득이 줄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생산이 줄어든다.

물가는 치솟는데 경제는 쪼그라든다.

1974년, 물가상승률 12%. 실업률 7%.
1975년, 실업률 9%.
1980년, 물가상승률 14.5%. 실업률 7.5%.

필립스 곡선이 말한 “불가능”이 현실이 되었다.

경기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
이 두 단어의 합성어가 세상에 등장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케인즈의 해열제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경기 침체니까 돈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된다.
인플레이션이니까 돈을 죄어야 한다.
그런데 돈을 죄면 경기 침체가 더 심해진다.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었더니 열이 더 오르고,
해열제를 끊으면 몸이 더 아프다.
양쪽 어디로 핸들을 돌려도 절벽이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름이 돌아왔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수십 년 전부터 케인즈를 비판해왔던 사람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수록 왜곡은 커진다.
통화량 팽창이야말로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더 명쾌하게 정리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해결은 잔인했다.
폴 볼커가 연방기금금리를 20%까지 올렸다.
경제는 심한 불황에 빠졌다. 실업률 10.8%.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목이 꺾였다.

미국은 10년간의 열병을 치르고 나서야
체온이 내려갔다.


자산시장은 이 10년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현금을 들고 있던 사람은 구매력을 잃었다.
1970년의 100달러는 1980년,
실질 구매력 기준 절반 이하가 되었다.

주식은 명목상 제자리.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S&P 500의 실질 가치는 60% 이상 증발했다.

금은 달랐다. 1971년 온스당 35달러.
1980년 온스당 850달러. 약 24배.

부동산도 올랐다.
농지 가격은 연평균 14% 상승.
임대 수익을 포함하면 인플레이션을 이겼다.

패턴이 보인다.
공급이 제한된 실물자산은 올랐고,
종이 위의 약속 — 현금, 채권, 성장주 — 은
무너졌다.


한 가지 더.

나는 2026년 3월, 이 글을 쓰는 지금,
비슷한 불안을 느낀다.

트럼프의 관세. 중동의 전쟁. FOMC의 금리 동결.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인가”라는
뉴스 헤드라인…

1973년의 욤키프르 전쟁과 오일쇼크.
2026년의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
역사가 반복된다고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구조는 닮아 있다.

물가가 오르는데 경기가 꺾이는 세계.
그 세계에서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 안전한가.
그것이 1970년대가 남긴 질문이다.


①편에서 나는 물었다.
와인잔에 남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대답은 명확하다.

닉슨이 금태환을 풀었을 때,
와인잔에 남은 것은 와인이 아니었다.
빛깔만 남은 달러였다.

다음 편에서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헨리 키신저. 석유를 달러에 묶은 거래.
페트로달러의 탄생.


[관련 글]


참고: Federal Reserve History, “The Great Inflation” (federalreservehistory.org). Milton Friedman & Anna Schwartz, “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963). A.W. Phillips, “The Relation Between Unemployment and the Rate of Change of Money Wage Rates in the United Kingdom” (Economica, 1958).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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