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장의 해부학 ①] 강세장은 화폐와 희망이 만나는 자리다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날.

존 템플턴은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1달러 이하에 거래되는 주식을 전부 사라.”

104개 종목을 샀다.
세상이 끝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내다 버린 주식을…

4년 뒤, 그 포트폴리오는 400%를 돌려줬다.
104개 중 파산한 것은 4개뿐이었다.

템플턴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고, 회의 속에서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하고, 도취 속에서 죽는다.”

아름다운 문장이다.
하지만 한 가지가 빠져 있다.
강세장은 감정만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강세장이란 무엇인가.

학술적으로는 단순하다.
직전 저점 대비 20% 이상 상승하면
우리는 강세장이라 부른다.
Lunde & Timmermann(2004)이 정립한 규칙.
주가가 직전 저점서 20% 이상 올라야 강세장 진입,
직전 고점에서 15% 이상 빠져야 약세장 전환.

Pagan & Sossounov(2003)는
여기에 최소 지속 기간 조건을 더했다.
너무 짧은 반등은 강세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그런데 이 정의에는 결함이 있다.
20% 상승을 확인한 시점에는
강세장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뒤다.
사후에야 확인할 수 있는 정의.

Kole & van Dijk(2017)는 이 문제를 다뤘다.
사후적 분류 규칙과 마르코프 국면전환 모형 비교 결과,

어떤 방법을 쓰든 강세장으로의 전환점은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는 결론.
강세장의 시작은 확인의 대상이지
예측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강세장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강세장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는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가장 강력한 강세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유동성. 하나는 서사.

유동성이 먼저다.

Jansen & Tsai(2010)는 통화정책 서프라이즈가
강세장/약세장 국면에서 주가에 미치는
비대칭적 영향을 연구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완화적 통화정책은 약세장에서
특히 강력한 반등을 촉발한다.
돈이 풀리는 것 자체가 시장의 국면을 전환시킨다.

이론이 아니라 역사로 보자.

1998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5%에서 3%까지 내렸다.
외환위기의 잿더미 위에 유동성이 쏟아졌다.
코스피는 277에서 1,000을 넘겼다.

2009년, 미 연준은 금리를 0%까지 끌어내리고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S&P 500은 666에서 출발해 11년간 올랐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강세장.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한국은행 기준금리 0.5%. 미 연준 제로금리 복귀.
역사상 가장 빠른 유동성 공급.
코스피는 1,400에서 3,300까지 치솟았다.

패턴은 동일하다.
금리가 내려가고, 통화량이 늘어나고,
갈 곳 잃은 돈이 위험자산으로 흐른다.


하지만 유동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15~2016년의 한국.
기준금리는 1.50%까지 내려가 있었다.
역대 최저 수준. 그런데 코스피는
1,900~2,100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돈은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돈에는 방향이 필요하다.
그 방향을 만들어주는 것이 서사다.


가장 강력한 강세장에는
항상 “이번엔 다르다”는 서사가 있었다.

1999년, 인터넷. “세상이 바뀐다.” 브라우저 하나가
인류의 소통 방식을 뒤집을 것이라는 믿음.
사업 모델이 없는 닷컴기업에 수십억 달러가 몰렸다.

2005~2007년, 중국의 부상.
“13억 인구가 산업화한다.”
철강, 기계. 현대중공업이 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2020~2021년, 전기차와 2차전지.
“내연기관이 끝난다.” 에코프로, LG에너지솔루션.
하루 거래대금이 70조를 돌파하며
코스닥이 코스피를 압도했다.

서사의 공통점이 있다.
신산업이 등장하고, 정책이 뒷받침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기관과 외국인은 항상 시장에 있다.
하지만 시장을 “들어올리는” 것은 개인이다.
서사에 감전된 개인의 돈이
유동성 위에 올라타는 순간,
강세장은 가속한다.


그러면 유동성은 있는데 서사가 없으면?
박스권이다. 2015년의 한국이 그랬다.

서사는 있는데 유동성이 없으면?
테마만 반짝이고 끝난다.
2022년이 그랬다. 로봇, AI라는 서사가 있었지만
금리는 오르고 있었고 유동성은 수축하고 있었다.
코스피는 22% 반등한 뒤 다시 주저앉았다.

강세장은 화폐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현상이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 가지 더.

템플턴은 감정의 사이클을 말했다.
비관 → 회의 → 낙관 → 도취.

하지만 그 감정의 사이클 아래에는
유동성의 사이클이 깔려 있다.
확장 → 가속 → 과열 → 수축.

감정은 유동성 위에서 춤을 춘다.
음악이 멈추면 춤도 멈춘다.

강세장을 예측하려 하지 마라. 대신 관찰하라.
유동성은 확장되고 있는가.
시장에 새로운 서사가 형성되고 있는가.
사람들의 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동시에 “예”가 되는 순간.
역사적으로, 그 순간이 강세장의 입구였다.

다음 편에서는 그 입구의 첫 번째 신호를 살펴보자.
시장이 살아나기 전, 항상 먼저 움직이는 곳이 있다.


관련 글


참고: Lunde, A. & Timmermann, A. (2004), “Duration Dependence in Stock Prices,” Journal of Business & Economic Statistics, 22(3). Pagan, A.R. & Sossounov, K.A. (2003), “A Simple Framework for Analysing Bull and Bear Markets,” Journal of Applied Econometrics, 18(1). Kole, E. & van Dijk, D. (2017), “How to Identify and Forecast Bull and Bear Markets?” Journal of Applied Econometrics, 32(1). Jansen, D.W. & Tsai, C.L. (2010), “Monetary Policy and Stock Returns,”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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