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y… No Gas Today.”
1973년 미국 오리건주의 한 주유소에 붙은 안내문.
욤키프르 전쟁 발발, OPEC이 석유를 무기로 쓴 뒤
미국의 주유소에는 기름이 없었다.
53년이 지난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었다.
WTI는 100달러를 넘었고, 브렌트유는 105달러.
전쟁 전 70달러대에서 한 달 만에 40% 올랐다.
서울의 기름값은 1860원/리터 돌파.
불과 30일만에 15% 상승.

한국은 이 위기에서 특별히 취약하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약 69%.
수입 원유의 거의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
일본(90%)보다는 낮지만,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한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
환율이 오르면 원유 수입 비용이 올라간다.
달러로 사는 기름을 원화로 치르기 때문이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0%.
한국은행 목표치와 정확히 같다.
하지만 3월부터 달라진다.
유가 상승분이 생산자물가에 반영되는 데는
통상 4~6주가 걸린다.
운송비, 원자재, 전기료, 난방비…
그리고 4월의 장바구니는 3월과 다를 것이다.
한은은 금리를 2.5%에서 동결했다.
여섯 번째 연속 동결.
인플레이션 전망을 2.1%에서 2.2%로 올렸다.
이 수치는 유가가 70달러대일 때의 전망이다.
100달러에서는 숫자가 달라진다.
정부는 이미 움직였다.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 1차. 휘발유 1,724원.
3월 27일, 2차. 1,934원. 2주 만에 210원 인상.
동시에 유류세 인하폭을 확대했다.
산업부의 이 조치가 없었으면
휘발유는 200원, 경유는 500원 더 올랐을 것이다.
이것은 1971년 닉슨이 한 일과 닮아 있다.
닉슨은 달러를 찍으면서 물가를 동결시켰다.
돈은 풀되, 가격은 못 오르게 막겠다는 것.
해열제를 먹이면서 체온계를 감추는 것과 같았다.
최고가격제는 시간을 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
억눌린 가격은 결국 풀린다.
닉슨의 물가 동결이 풀린 1973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폭발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체질이다.
한국은 에너지를 수입하고 제품을 수출한다.
유가가 오르면 제조 비용이 오른다.
그런데 수출 가격에 그대로 전가할 수 있는가?
트럼프의 관세가 수출 장벽을 높이고 있고,
중국은 내수 부진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을 수출 중.
한국 제조업은 양쪽에서 압력을 받는다.
비용은 올라가는데 가격은 올리기 어려운 구조.
이것이 교과서적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제 조건.
비용이 오르고, 성장이 꺾이고…
정책 당국이 양쪽을 동시에 잡을 수 없는 상태.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더 꺾인다.
금리를 내리면 환율이 더 오르고 물가가 더 뛴다.
1970년대 미국의 FED가 빠졌던 함정과 같다.
물론 한국이 완전히 무방비인 것은 아니다.
비축유는 약 208일분.(25년 12월 기준)
미국산 원유 비중은 17%까지 올라왔고,
사우디는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동서 파이프라인으로 일 700만 배럴을
홍해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단기 공급 차질은 버틸 수 있는 구조다.
시장도 무너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1분기 KOSPI는 +32% 올랐다.
반도체와 AI 기대감이 시장을 끌어올렸고,
조선과 방산은 전쟁 이후 오히려 강해졌다.
한국 수출의 축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것이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비축유는 시간을 벌어줄 뿐,
유가 자체를 낮추지 못한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여도,
에너지 비용 상승은 내수와 제조업을 직격한다.
경제의 한쪽이 달리고 있을 때
다른 쪽이 무너지는 것.
이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의 교활한 점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얼마나 갈 것인가.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해서도 안된다.
대신 구조를 보고 대응계획을 세울뿐.
트럼프에게 고유가는 독이다.
2026년 중간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중국과의 관세 전쟁을 벌이려면
에너지 비용이 낮아야 미국 제조업이 버틴다.
유가 100달러는 트럼프의 경제 공약과 충돌.
그래서 트럼프는 이란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4월 6일까지 연기했다.
협상의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루비오 국무장관의 “몇 주 내 종전”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시나리오 A: 조기 종결.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고 유가가 80달러대로 하락.
한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해소.
이 경우 에너지·방산주의 프리미엄이 빠지고,
눌려 있던 내수·소비주가 반등할 가능성.
시나리오 B: 전선 확대.
지상군 투입, 봉쇄 장기화 시 유가 120~150달러.
골드만삭스는 5주 이상 봉쇄 시 100달러,
번스타인은 극단 시나리오에서 150달러를 전망.
이 경우 한국의 GDP 성장률은
정부 전망(2.0%)을 밑돌고, 물가는 3%를 넘기며,
한은은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외통수에 빠진다.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 자체는
시장을 일시적으로 흔들 뿐이다.
역사적으로 외생 변수에 의한 급락은
수 주 안에 회복됐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다르다.
1970년대 S&P 500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질 가치가 60% 이상 증발했고,
회복에 10년이 걸렸다. 전쟁의 충격은 짧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충격은 길다.
지금 봐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전이되는가 여부다.
공포가 지배하는 시간, 19일.
한 가지 더 볼 것이 있다.
전쟁이 끝난 뒤의 구조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중동에는 거대한 복구 수요가 생겼다.
오일달러가 쌓인 산유국들은 인프라를 지었다.
1970~80년대 한국 건설업체들이
중동에 대거 진출했다.
현대건설이 사우디에서
주베일 산업항을 지은 것이 1976년이다.
2026년도 같은 패턴이 올 수 있는가.
전쟁이 끝나면 이란의 파괴된 인프라 복구,
걸프 지역의 에너지 시설 재건,
그리고 방산 수요의 장기화 가능
하지만 1970년대와 다른 점도 있다.
당시 한국은 저임금 건설 인력의 공급자였다.
지금 한국의 강점은 반도체, 조선, 원전이다.
복구 수혜가 있다면 건설보다는
에너지 인프라와 방위 산업 쪽일 가능성이 높다.
단, 이것은 전쟁이 끝난 뒤의 이야기다.
전쟁 중에는 비용 상승의 직격탄이 먼저 온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관찰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통행이 재개되는가, 봉쇄가 지속되는가.
이것이 유가의 방향을 결정한다.
둘째, 4월 미국-이란 협상.
트럼프가 4월 6일 기한을 설정했다.
이 기한이 지나면 에너지 인프라
공격 가능성이 열린다.
시장은 이 날짜를 주시하고 있다.
셋째, 한국의 3~4월 물가 지표.
유가 상승분이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시차를 추적해야 한다.
3월 CPI가 2.5%를 넘기면…
스태그플레이션 논의가 본격화된다.
1970년대의 교훈은 분명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은 한순간에 오지 않았다.
통화 팽창이 먼저 있었고,
외부 충격이 방아쇠를 당겼고,
정책 당국의 오판이 10년을 만들었다.
지금 통화 팽창은 이미 있었다.
팬데믹 때의 유동성, 그리고 정부의 확장재정.
그리고 외부 충격이 진행 중이다.
호르무즈 봉쇄, 그리고 관세문제.
국제사회의 질서와 구조는 바꿀 수 없다.
남은 것은 정책 당국의 선택이다.
측정하라. 예측하지 마라.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시장을 관찰하고, 준비해야한다.
그것이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관련 글]
참고: 한국무역협회 K-stat, 원유 수입 통계 (2025). Federal Reserve History, “The Great Inflation.” 딜로이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나리오 분석 (2026.03).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결정문 (2026.03). Trading Economics, South Korea Inflation Rate.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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