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역사 ①] 네로의 은화


와인에 물을 타면 처음엔 아무도 모른다.

한 잔, 두 잔.
맛이 조금 싱거워졌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와인이라 믿는다.

하지만 물을 타는 손이 멈추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잔에 남는 것은 와인이 아니다.
그저 빛깔만 비슷한 와인과 물 그 사이 무언가다.

서기 64년. 로마 황제 네로가 한 일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로마 제국의 화폐는 은화 데나리우스였다.

군인의 봉급, 상인의 거래, 세금의 납부.
제국의 모든 경제 활동이 이 은화로 돌아갔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데나리우스는
은 함량 약 98%. 무게 약 4.5그램.
은화라는 이름에 걸맞은 은화였다.

네로는 이 은화의 은을 깎았다.

로마 대화재 이후 도시 재건 비용,
끝나지 않는 변경 전쟁의 군비,
그리고 황제 자신의 사치.
로마 세수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방법은 단순했다. 은화에 구리를 섞은 것이다.
그러면 같은 양의 은으로 더 많은 돈을 만들 수 있다.
네로는 은 함량을 약 93%로 낮추고,
무게까지 줄였다.
실질적으로 20%의 절하.

동전의 숫자는 늘어났다.
하지만 각 동전의 가치는 줄었다.
이것이 디베이스먼트(debasement). 화폐의 타락.


네로의 20%는 전례가 되었다.

다음 황제가 은화를 조금 더 깎았다.
그리고 그 다음 황제가 또 깎았다.
트라야누스 시대에 89%.
안토니누스 피우스 때 83%.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57%까지 끌어내렸다.

카라칼라는 더 교묘한 수를 썼다.
215년, 안토니니아누스라는 새 은화를 발행한 것.
액면가는 데나리우스의 2배.
그러나 실제 은 함량은 1.5배에 불과.
정부가 공인한 사기였다.

그리고 3세기 위기가 왔다.
갈리에누스 치세(253~268년),
은화의 은 함량은 5% 이하로 추락했다.
은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구리 위에 은을 씌운 것에 불과한 동전.

200년에 걸친 희석.
와인에 물을 타고, 또 타고, 또 탄 결과.


군인들이 먼저 알아챘다.

은이 5%밖에 들어있지 않은 동전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었다.
봉급을 현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곡물, 직물, 토지. 화폐 경제가 무너지고
물물교환이 다시 돌아왔다.

상인들도 은화를 거부했다.
도시의 거래는 멈췄고, 세금 징수가 마비됐다.
그리고 국경의 방어조차 허물어졌다.

막스 베버는 이 과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화폐경제의 파탄이 정치적·군사적 붕괴로 연결된 것이다.”

외적의 침입이 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아니었다.
화폐의 죽음이 제국을 죽였다.


그런데 같은 로마, 동로마에서는
정반대의 실험이 이루어졌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새로운 금화 솔리두스를 발행했다.
4.5그램, 순도 약 98%.
로마 파운드의 72분의 1이라는 정밀한 기준.

서로마가 은화를 깎아 멸망할 때,
동로마는 금화를 지켜 1,000년을 더 살았다.
솔리두스는 10세기까지 무게와 순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중세의 달러”라 불린 화폐.

두 제국의 운명을 가른 것은
군사력도, 영토도, 황제의 능력도 아니었다.
화폐의 순도였던 것이다.


시간을 1,000년 뒤로 돌린다.

15세기 말,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스페인이 볼리비아에서 포토시 은광을 발견했다.
산 하나가 통째로 은이었다. 은광 3만 톤으로도 지키지 못한 것

신대륙의 은이 유럽으로 쏟아졌다.
150년에 걸쳐 유럽의 물가는
4배에서 6배까지 치솟았다.
역사는 이것을 ‘가격혁명’이라 부른다.

네로는 은화에서 은을 빼냈다.
스페인은 은을 너무 많이 퍼부었다.
방법은 반대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졌다.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물가 상승이 사회 구조를 뒤집는다.

16세기 유럽의 지배계층은 봉건 귀족과 성직자.
이들은 토지에 고정된 임대료로 부를 유지했다.
물가가 4배로 뛰면 고정 수입의 실질 가치는
4분의 1로 쪼그라든다.
땅을 가진 자들이 가난해졌다.

같은 시기,
종교개혁이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수도원의 토지가 매각되기 시작했다.
이 토지를 사들인 것이 새로운 계급.
젠틀리(Gentry).
상인과 기업가들이 실물자산을 매집하며
봉건 귀족의 자리를 대체했다.

인플레이션이 구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다.

프랑스의 장 보댕은 이 현상을 관찰하며
화폐량 증가와 물가의 관계를
최초로 학문적으로 정립했다.
돈을 많이 풀면 물가가 오른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이 명제는
불과 500년 전에야 학문이 되었다.


네로의 은화에서 스페인의 은광까지.
로마 군인의 봉급 거부에서
봉건 귀족의 몰락까지.

2,000년의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현금 보유자는 벌을 받고,
실물자산 보유자는 보상받았다.

다음 편은 이 이야기의 현대판을 다룬다.
1970년대, 석유라는 이름의 인플레이션.
닉슨이 금태환을 폐지한 날,
과연 와인잔에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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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Wikipedia, “Denarius,” “Solidus (coin),” “Roman currency.” NGC Ancients, “The Decline of Roman Silver Coinage” (2015). Kenneth Harl, “Coinage in the Roman Economy” (Johns Hopkins, 1996).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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