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광 3만 톤으로도 지키지 못한 것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금도, 은도 아니다.
사람,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하다.

16세기 유럽, 스페인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남미 포토시 은광에서 캐낸 3만 톤의 은.
유럽 전체 은 매장량의 세 배에 달하는 부.
그리고 그 돈으로 건조한 무적함대.

그러나 1588년,
영국 앞바다에서 무적함대가 격침되었고,
유럽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어떻게 세계 최강의 해군이 무릎을 꿇었는가?

답은 전술이나 날씨가 아닌 곳에서 나왔다.
바로 96년 전, 스페인이 내린 하나의 결정에서…


1492년 3월 31일,
스페인은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유대인에게 떠나라고 명령한 것.
단, 금과 은, 화폐는 가져갈 수 없었다.

770년에 걸친 레콩키스타를 완수한 기독교 세력이
다음 타깃으로 유대인을 겨냥한 것이다.
추방된 수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수만에서 수십만으로 추정된다.

그해 8월 3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출항했다.
전날까지도 항구에는 떠나는 유대인들의 배가
가득 차 있었기에… 콜럼버스는 하루를 미뤄야 했다.

칙령과 출항.
두 사건은 한 달 남짓 차이였다.

금과 은을 가져갈 수 없었던 유대인들…
그들 수만 명이 일제히 화폐를 실물로 바꾸면서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덮쳤다.
그러나 더 치명적인 것은 장기적 결과였다.

당시 유대인은 유럽의 금융과 무역의 주축이었으며,
영국에서 왕실 재정의 상당부분을 담당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다.

스페인은 금, 은보다 더 귀한 것을 스스로 내쫓았다.
사람의 두뇌와 네트워크를 말이다.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향한 곳 중 하나가 네덜란드.

데카르트는 1630년 암스테르담에서 이렇게 썼다.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에서
이토록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유럽에서 유일하게
유대인을 추방하거나 학살하지 않은 나라.

이주한 유대인들은
암스테르담의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환전, 신용, 정보 네트워크.

유럽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들은
시나고그를 통해 각국의 물가와 환율을 교환했다.
유럽에서 금은 교환비가 12대 1.
중국에서는 6대 1이었다.

이 차이를 이용했고,
자본이 빠르게 늘었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VOC가 생겼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자본을 소액 지분으로 쪼개
1,100명 이상이 함께 투자하는 구조.
자본금 650만 길더. 오늘날 가치로 약 1억 유로.

VOC 주식 증서 원본(세계 최초의 주식 증서, 1606년)

7년 후.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이 설립됐다.
사람들은 금을 맡기고 은행권을 받기 시작했다.
보관된 금보다 더 많은 은행권이 발행됐고,
신용 창조가 시작됐다.

금리도 내려갔다.
영국이 10%일 때 네덜란드는 4% 이하였다.
그 결과 유럽의 상인과 자본이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들었다.

자원 없는 신생국이
세계 무역 중심이 된 이유는 은광이 아니었다.
추방당한 사람들이 가져온 네트워크였다.


1651년, 영국.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조례를 발표했다.
영국과 무역하려면 반드시 영국 배를 이용하라.
네덜란드를 겨냥한 경제 봉쇄였다.

그러나 그 뒤에는 더 정교한 계산이 있었다.

크롬웰은 시몬 루자토가 1638년에 쓴
『베니스에서의 유대인에 대한 소론』에서
결정적 문장을 읽었다.
“유대인들이 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무역과 상업이 넘쳐흐른다.”

유대인이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갔더니
네덜란드가 패권국이 되었다.
그 유대인을 영국으로 끌어오면?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영국은 1290년,
에드워드 1세가 유럽 최초로 유대인을
국가 단위에서 추방한 나라였다.

크롬웰은 항해법으로 우회했다.
네덜란드를 경제적으로 봉쇄하여
유대인들이 스스로 영국으로 이주하도록
유인한 것이다.

1656년, 크롬웰은 랍비 므낫세 벤 이스라엘과
비공식 협상을 마쳤다.
추방령을 취소하지 않은 채,
비공식적으로 유대인을 받아들였다.

1694년에는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되었다.
민간 주주가 소유하고, 화폐 발행권을 가진 은행.
이 구조가 오늘날 중앙은행 시스템의 원형이 되었다.


350년의 궤적이 보여주는 법칙.

유대인을 쫓아낸 스페인은
은광의 부에도 불구하고 쇠락했다.
유대인을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자원 없이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 유대인을 다시 끌어온 영국은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다.

유대인에 대한 관용은 도덕적 미덕이 아니었다.
경제적 전략이었다.

인재가 가는 곳에 자본이 모이고,
자본이 모이는 곳에 혁신이 피어나고,
혁신이 피어나는 곳에 패권이 뒤를 잇는다.

스페인이 3만 톤의 은으로도 지키지 못한 것을
네덜란드는 관용 하나로 이루어냈다.
패권의 무게는 금고가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


참고: Jonathan Israel, “The Dutch Republic: Its Rise, Greatness, and Fall, 1477-1806” (Oxford, 1995). Niall Ferguson, “The Ascent of Money” (Penguin, 2008). World History Encyclopedia, “Dutch East India Company” (2024).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 measure-dont-predict.com

Leave a Comment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