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처럼 악을 만드는 존재 – 윌리엄 골딩『파리대왕』의 경고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영국 해군 중위 윌리엄 골딩은 로켓 발사함의 지휘관으로서 해변을 향해 포격 명령을 내렸다. 해변에서 쓰러지는 것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군인인지 민간인인지는 함포의 연기 속에서 구별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영국의 한 학교에서 소년들을 가르치며 이렇게 썼다. “인간은 꿀벌이 꿀을 만들 듯 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10년 후인 1954년, 그 문장은 한 … Read more

정도를 가라, 그러나 유약하지 않게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가족의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돈이 사람을 어디까지 잔인하게 만드는지, 아들은 똑똑히 보았다. 재산을 둘러싼 다툼 속에서 아버지는 재산도, 가족도, 친구도 잃었다. 아버지는 유약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거친 물살에 어울리지 않는…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남긴 것은 재산이 아니라 가훈 한 줄이었다. “정도(正道)를 가라.” 아들은 결심했다. 정도를 따르되, 아버지처럼 유약하게 살지는 … Read more

황제의 일기장

기원후 170년, 겨울.도나우 강은 얼어붙었고, 카르눈툼 요새의 천막 안에는 촛불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게르만 부족 2만이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전령이 돌고 있었다. 동쪽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파르티아 전쟁의 승전보 대신 역병을 선물로 가져왔다. 안토니누스 역병 — 훗날 천연두로 추정되는 이 전염병은 제국 인구 7백만을 앗아갈 것이었다. 국고는 바닥났고, 황후 파우스티나의 불륜 소문이원로원에 … Read more

투자를 사랑하는 법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음악을 기대한다. 그러나 처음 1년은 손가락이 아플 뿐이다. 스케일을 반복하고, 손목 각도를 교정하고, 메트로놈에 맞춰 같은 마디를 수십 번 친다. 아름다운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오는 것은 지루함과 의심뿐이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러다 어느 날, 손가락이 건반을 기억하는 순간이 온다.머리가 아니라 몸이 연주한다. 그때 비로소 음악이 시작된다. 에리히 프롬은 … Read more

공책 한 권의 반란

감시당하는 세계에서 한 남자가 공책을 샀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범죄였다. 조지 오웰의 《1984》. 소설 속 오세아니아에서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 직원이다. 업무는 과거의 기록을 현재에 맞게 고치는 것. 텔레스크린은 24시간 그를 감시한다. 표정까지. 이 세계에서 윈스턴이 저지른 최초의 반역은 무기를 든 것이 아니었다. 공책을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일기가 반역인가. 전체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 Read more

이 공간을 여는 이유

1만 2천 년 전, 인류는 한 가지를 발명했다. 밀을 심는 것이다. 그 전까지 인간은 사냥꾼이었다. 눈앞의 먹잇감을 좇아 달렸다. 잡으면 살고, 놓치면 굶었다. 오직 직감과 반사신경이 생존을 결정했다. 밀을 심은 인간은 달라졌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대고, 기다렸다. 수확까지 몇 달. 그 사이에 날씨를 관찰하고, 토양을 기록하고, 다음 해의 파종 시기를 계산했다. 사냥꾼은 본능으로 생존했다. 농부는 …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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