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6월,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
연합국은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선고했다.
1,320억 금마르크. 당시 달러로 330억 달러.
영국 협상단의 젊은 경제학자 케인즈는
조약문을 읽으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독일이 실제로 갚을 수 있는 금액은
기껏해야 그 4분의 1 수준이라는 결론.
케인즈는 협상장을 박차고 나와
두 달 만에 한 권의 책을 써냈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
그는 이 조약을 “카르타고식 평화”라 불렀다.
패전국을 완전히 짓밟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평화.
같은 해, 프랑스 원수 페르디낭 포슈는
조약의 서명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평화가 아니다.
20년 기한의 휴전 문서일 뿐이다.”
이 예언은 정확히 20년 뒤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적중했다.
갚을 수 없는 빚 앞에서
독일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돈을 찍어내는 것.
배상금은 달러와 금으로 납부해야 했고,
달러를 사려면 마르크가 필요했다.
그래서 윤전기를 돌렸다.
이렇게 찍어낸 돈의 이름이
“파피어 마르크(Papiermark).”
“파피어”는 독일어로 “종이.”
이름부터 이미 본질을 폭로하고 있었다.
금과 교환해주는 보증서가 아니라, 그냥 종이.
달러는 금으로 교환되는 화폐이고,
금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마르크는 윤전기만 돌리면 무한히 늘어난다.
결과는 수요와 공급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 그대로였다.
1921년, 1달러에 300마르크.
1922년, 7,000마르크.
1923년 11월, 4조 2천억 마르크.
숫자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평생 절약해서 10억 마르크를 모은 시민이 있다.
어느 날 아침, 빵 한 조각이 1,000억 마르크.
평생의 저축으로 빵 한 조각도 살 수 없다.

공장 노동자들은 임금을 시간 단위로 받았다.
아침에 받은 돈이 오후면 반토막.
돈을 받자마자 달려가 뭐라도 사야 했다.
아이들은 가치 없는 지폐로 종이접기를 했다.
어른들은 그 지폐를 난로에 태워 연료로 썼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아니다.
평생의 노동이 하룻밤 사이에 무(無)로 돌아가는 경험이다.
세금도 아니고, 약탈도 아닌 방식으로
국민의 저축 전부를 조용히 증발시키는 —
가장 잔인한 형태의 부의 수탈.
이 폐허 위에서 괴물이 태어났다.
1919년, 안톤 드렉슬러가
당원 60명으로 독일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그해 9월, 군 정보 요원으로
이 당을 정탐하러 갔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전직 사병 아돌프 히틀러가
정탐 대신 입당을 선택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분노의 씨앗.
그런데 히틀러가 연설을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논리로 설득하지 않았다.
감정을 직접 건드렸다.
“여러분의 굶주림, 여러분의 분노,
여러분의 굴욕 — 그 원인이 바로 저들이다.”
경제적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이 단순한 메시지는 불길처럼 번졌다.
합류 1년 만에 집회 2,000명.
2년 만에 6,000명.
1923년에는 돌격대를 이끌고
뮌헨의 맥주홀에서 쿠데타를 시도했다.
실패했지만, 재판에서 그는 영웅이 되었다.
감옥에서 《나의 투쟁》을 썼다.
인과 사슬은 냉혹하다.
베르사유의 과도한 배상금 →
파피어 마르크 남발 →
하이퍼인플레이션 →
중산층 저축의 전소 →
분노의 폭발…
그리고 히틀러의 등장.
그 시작점은 거울의 방에서 서명된
한 장의 조약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통화청장 얄마르 샤흐트는
1923년의 파국 속에서 하나를 간파했다.
금이 없으면 땅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면 된다.
1923년 11월 15일, 렌텐마르크가 발행되었다.
“렌텐(Renten)”은 독일어로 “부동산 저당권.”
파피어 마르크가 “종이 돈”이었다면,
렌텐마르크는 “땅으로 보증된 돈.”
교환 비율: 1조 파피어 마르크 = 1 렌텐마르크.
0이 12개 삭제되었다.
국민들은 쓰레기가 된 종이를 들고 와
새 화폐로 바꿨다.
그렇게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멈췄다.
화폐는 종이가 아니다.
화폐의 본질은 “부의 저장”이다.
내가 오늘 쌓은 가치가 내일에도 보존된다는 약속.
그 약속을 보증하는 담보가 없는 한,
아무리 정교하게 인쇄한 종이도 종이일 뿐이다.
그러나 렌텐마르크는
경제를 봉합했을 뿐,
분노를 치유하지는 못했다.
1929년 대공황이 독일을
다시 나락으로 밀어넣었을 때,
감옥에서 나온 히틀러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 증발한 신뢰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1923년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이것은 경제를 죽이지 않았지만,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믿음을 죽였다.
그 빈자리에 1929년 대공황이 밀려들었을 때,
가장 단순하고,
가장 극단적인 목소리가
권력을 움켜쥐었다.
케인즈의 경고를 떠올릴 때다.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화폐를 타락시키는 것이다.”
참고: John Maynard Keynes,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1919). Adam Fergusson, “When Money Dies: The Nightmare of the Weimar Collapse” (1975). Wikipedia, “Hyperinflation in the Weimar Republic.”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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