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170년, 겨울.
도나우 강은 얼어붙었고,
카르눈툼 요새의 천막 안에는
촛불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게르만 부족 2만이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전령이 돌고 있었다.
동쪽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파르티아 전쟁의 승전보 대신
역병을 선물로 가져왔다.
안토니누스 역병 —
훗날 천연두로 추정되는 이 전염병은
제국 인구 7백만을 앗아갈 것이었다.
국고는 바닥났고, 황후 파우스티나의 불륜 소문이
원로원에 나돌았으며,
가장 신임하던 시리아 총독 카시우스는
“황제가 죽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스스로 황제를 자처했다.
이 모든 무게가 한 사람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칙령을 내리거나 복수를 명하는 대신
그리스어로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네 의견을 버려라. 그러면…
‘내가 피해를 입었다’는 느낌이 사라질 것이다.
느낌이 사라지면,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제16대 황제.
서기 121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12살부터 스토아 철학에 빠졌으며,
40세에 원치 않던 제위에 올랐다.
그가 원한 것은 철학자의 삶이었다.
운명이 건넨 것은 전쟁터였다.
『명상록』의 원제는 Ta eis heauton —
“자기 자신에게.” 출판을 염두에 둔 글이 아니다.
황제가 전쟁터의 천막에서, 역병이 도는 궁에서,
배신의 소식을 들은 밤에,
오직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쓴
사적인 기록이다.
그래서 허세가 없다. 꾸밈이 없다.
1,850년이 지난 오늘 읽어도
문장이 마음에 와닿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의 글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다.
큰 명제를 던진 뒤, 날카로운 비유로 못을 박는다.
“의사들이 갑작스런 수술에 대비해 메스를 가까이 두듯, 네 원칙들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원칙 없는 사람은 매 순간 처음부터 판단해야 한다.
판단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소모된 마음은 감정에 무릎을 꿇는다.
아우렐리우스가 20년간의 치열한 전쟁 속에서
무너지지 않은 것은 용기 때문이 아니었다.
미리 벼려둔 원칙이라는 메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놀랍도록 합리적이었다.
“신이 있다면 나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고,
없다 해도 내가 손해보는 것은 없지 않은가?”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멈칫했다.
17세기 블레즈 파스칼이 『팡세』에서 내놓은
유명한 ‘신의 존재에 대한 내기’ ,
그보다 1,500년이나 앞선 사유였다.
경건한 신앙과 냉철한 논리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플라톤이 꿈꾸던 철인왕이 실제로 있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상록이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대목은 따로 있다.
“현재의 시간은 만인에게 길이가 같고,
우리가 잃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잃는 것은 한순간에 불과하다.
아무도 과거나 미래를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호흡, 육체, 이성으로 이루어져 있되,
오직 이성만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그는 썼다.
호흡은 멈추고, 육체는 쇠하며,
시간은 내 손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성은, 그것만은 끝까지 나의 것이다.
1,800년 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도달한 결론,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우리의 자유가 있다”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아우렐리우스는 수용소가 아니라
왕좌 위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서기 180년 3월 17일. 빈도보나(지금의 빈).
아우렐리우스는 5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역병이었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그가 20년간 싸운 전쟁의 역병이 결국
그 자신을 데려간 것이다.
그의 뒤를 이은 것은 열여덟 살 아들 코모두스였다.
열세 명의 자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
그러나 코모두스는 검투사 경기에 집착하고
원로원을 학살한 폭군이 되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렇게 썼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은
로마 쇠퇴의 시작이었다.”
자기 자신은 완벽하게 다스렸으나,
자기 아들은 다스리지 못한 아버지.
이것이 명상록에 드리운 가장 큰 그림자다.
하지만 어쩌면 아우렐리우스는
그조차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만물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의견이다.”
자연은 변하고, 제국은 무너지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저버린다.
그것이 세상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이성은 제자리를 지켜
그 흐름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썼다.
흘러간 물을 붙잡거나,
아직 오지 않은 물을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명상록은 그래서 위로의 책이 아니다.
태도의 책이다.
1,850년 전, 전쟁과 역병과 배신 한가운데서
한 사람이 촛불 아래 앉아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그리고
그 질문에 떳떳하게 답하려 애썼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이 책의 전부이고…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곁에 두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이 책이다.
참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Ta eis heauton). Kyle Harper, “The Fate of Rome” (Princeton, 2017). 에드워드 기번,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1946). 블레즈 파스칼, 《팡세》(1670). 본 콘텐츠는 교육/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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